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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초기의 대외 관계

- 당나라와의 관계 : 제2대 무왕 때는 적대적 관계 → 8세기 후반 제3대 문왕 때 관계 개선·교류 확대

- 신라와의 관계 : 대립 관계 : 1.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에 적대적, 당나라의 분열 정책으로 군사적 충돌, 행장 사건 

2. 교류 관계 : 제3대 문왕 때 신라도 개설

- 돌궐과의 관계 : 친선 관계 (당나라 견제 목적)

- 일본과의 관계 : 친선 관계 (신라 견제 목적) 

발해의 건국

그는 누구인가? 발해도 역시 또 최수종

제1대 고왕 (대조영) (698년~719년)

- 연호 : 천통

-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며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698년)

- 대조영이 713년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 받은 후 국호를 발해로 변경

-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의 대부분은 말갈인

발해의 발전 (8세기)

제2대 문왕 (대무예) (719년~737년)

- 연호 : 인안

- 대조영의 아들

- 일본에 서신과 국서를 보내면서 친선 관계 수립

- 일본에 보낸 국서의 내용에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드러냄 (우리는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았다)

- 흑수말갈이 발해에 알리지 않고 당나라에 충성을 맹세하자, 발해 무왕이 크게 분노

- 분노한 무왕은 동생 대문예를 보내 흑수말갈 공격 시도

- 동생 대문예가 무왕의 결정에 반대며 당나라로 망명

- 무왕은 당나라 현종에게 동생 대문 예의 소환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산둥 반도의 덩저우를 공격 → 자사 위준을 죽이고 덩저우를 함락

- 당나라는 신라 성덕왕에게 원군 요청, 신라군 10만 명이 출전하였으나 폭설로 실패

제3대 문왕 (대흠무) (737년~793년)

- 연호 : 대흥

- 대무예의 아들

- 상설 교통로인 신라도 개설

- 동모산을 떠나 중경 현덕부 → 상경 용천부 → 동경 용원부로 이동 (문왕 사후 제 5대 성왕 때 상경 용천부로 재천도)

- 당의 중앙 관제인 3성 6부제 도입

- 발해 수도 상경에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주작대로를 설치

- 자신을 황상, 전륜성왕, 천손이라고 표현하며 위상을 과시

- 당나라는 762년에 기존의 발해군왕을 발해국 왕으로 승격시킴

- 국립 대학인 주자감을 설립

-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을 고려 국왕이라고 표현함

발해의 전성기

발해 전성기(고구려 보다 넓은 영토)

제10대 선왕 (대인수) (818년~830년)

- 연호 : 건흥

- 발해 역사상 최대 영토 확보

- 영토 확장에 따라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구역 마련

-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음

-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른 빈공과에 신라 다음으로 많은 급제자를 낸 시기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다툼 : 쟁장사건 

- 발해와 통일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갈등한 사건

- 당나라는 신라와의 오랜 관계를 내세워 이를 거절함

- 이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갈등을 엿볼 수 있음

- 최치원의 사불허북국거상표 : 통일 신라의 최치원은 이 사건 후 당나라 황제에게 '사불허북국거상표'라는 감사 글을 씀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

- 10세기 초반 거란이 중국 5대 10국의 분열기를 이용하여 크게 성장

- 거란의 야율아보기(거란의 황제)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요나라를 건국

- 발해 마지막 왕인 대인선 때에 거란 야율아보기의 공격으로 발해 멸망

발해 유민들 고려에 귀순

- 발해 멸망 후, 세자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유민들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

- 태조 왕건은 이들을 포용하여 왕족으로 대우함

- 발해 유민들의 부흥 운동으로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정안국 건국 → 요나라의 공격을 받아 986년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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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왕들 (8세기~9세기)

제37대 선덕왕 (780년~785년)

- 혜공왕의 피살로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 → 신라 하대 시작

제38대 원성왕 (785년~798년)

- 무열 왕계 김주원과의 왕위 다툼 끝에 김경신이 무력으로 승리하고 원성왕으로 즉위

- 독서삼품과 실시 : 국학의 졸업 시험 형식 (독서 삼품과 가 우리나라 최초의 과거 시험은 아님)

제41대 헌덕왕 (809년~826년)

- 김헌창의 난, 김범문의 난 진압 → 무열왕계 진골들을 6두품으로 강등

제42대 흥덕왕 (826년~836년)

흥덕왕~문성왕까지 활약한 장보고역의 또 최수종

- 장보고의 건의에 당나라, 일본과의 무역 요충지인 전남 완도에 청해진 설치

- 모든 관등에 따른 복색·거기·기용·옥사 등의 규정을 반포

제45대 신무왕 (839년)

- 장보고의 도움으로 즉위하였으나 병사

제46대 문성왕 (839년~857년)

- 장보고가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들이려다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 장보고가 난을 일으킴

- 장보고의 난을 진압하고 청해진을 폐지

제51대 진성여왕 (887년~897년)

- 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등 잦은 민란 발생

- 각간 위홍과 승려 대구에게 향가집 <삼대 목>을 편찬하게 함

-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를 받아들여 개혁 시도 →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제55대 경애왕 (924년~927년)

-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가 위기 심화

-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고 피살됨

 

신라의 멸망 (10세기)

제56대 경순왕 (927년~935년)

-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 → 신라 멸망 (935년)

- 왕건은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최초의 사심관)

마의태자

- 경순왕의 아들

-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며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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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라리가 6 Round] 발렌시아 vs 헤타페          

19-20라리가 6Round 발렌시아 vs 헤타페와의 경기는 09월 26일 한국시간으로 03:00시에 시작하였습니다.

헤타페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온 이강인은 라리가 리그 첫 골을 넣고 평점 7.3을 받으며, 이날 함께 나선 14명의 팀 동료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점수이였습니다. 

전반 1분 헤타페의 하이메 마타 선수의 득점

□ 1분 득점 당시 헤타페의 하이메 마타 선수의 위치는 업사이드 위치였지만, 주심은 그냥 진행하여 골로 인정

전반 30분 막시 고메스 선수의 득점

왼쪽 측면에서 이강인의 크로스에 수비수가 헤딩으로 걷어 냈지만, 멀리 가지 못한 공을 막시 고메스 선수의 바이시클킥으로 득점 성공 

34분 발렌시아의 막시 고메스 선수의 득점

오른쪽 측면 다니 파레호의 크로스 이어 막시 고메스가 헤딩으로 득점에 성공

39분 발렌시아 이강인 선수 득점

이강인 라리가 첫골

오른쪽 측면에서 로드리고의 중앙 패스에 이어 이강인의 원터치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

전반 종료

66분 헤타페 제이미손 득점

69분 헤타페 앙헬 로드리게스 득점

73분 발렌시아 이강인 교체 아웃

이렇게 경기가 종료되면서 6라운드 최종 스코어는 3:3 무승부

 

이날 이강인은 막시 로드리게스의 두 골을 이끄는 기점 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반 39분 직접 골까지 터뜨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축구 통계매체 <후스코어드 닷컴>도 이강인의 활약을 높게 평가하며, 함께 선발 출전해 멀티골을 기록한 막시 로드리게스의 8.1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발렌시아 vs 헤타페의 경기에서 가장 어린선수로 형들 틈에서 출전 기회를 부여받고(그것도 선발 출전), 경기장을 폭넓게 활용하며 플레이 메이커로서 모든 골에 관여하는 훌륭한 포퍼먼스를 펼쳤다.

2001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의 1군에서 무섭게 성장해가고 있는 이강인 선수는 발렌시아 역사상 외국인 최연소 골을 넣었다는 기록을 보유하며, 더욱 크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축구 유망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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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통일의 주역

제29대 태종 무열왕 (654년~661년)

최수종이 무열왕으로 나온 드라마

-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즉위

- 김춘추의 즉위를 도운 김유신 가문이 기존의 왕비족인 박 씨를 대신하여 왕비족으로 등장

-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킴 (660년)

- 사정부를 설치하여 관리에 대한 감찰 기능 수행

- 갈문왕 제도 폐지

- 중국식 시호 사용

제30대 문무왕 (661년~681년)

- 고구려를 멸망시킴

- 지방의 관리들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 설치

- 나·당 전쟁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 완성

- 14부 중 최고 부서였던 집사부의 장관 시중의 권한을 강화

- 왕과 대립 관계에 있는 귀족들의 회의체인 화백 회의의 의장 상대등의 권한은 약화

- 문무대왕릉 (경북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

신라 중대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제31대 신문왕 (681년~692년)

- 신문왕의 장인 김흥돌의 난을 진압

- 수도 경주에 국립 대학인 국학 설립

- 중앙 정치 조직을 14부로 완성

- 지방 행정 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정비

- 중앙군을 9서당, 지방 군을 10정으로 설치

- 신문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관료 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관료 전은 조세와 공납만을 취급하고 역은 수취할 수 없음

-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대구)로 옮기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함

- 삼국 통일을 이룩한 아버지 문무왕이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경주 감은사 건립을 완성

- 만파식적 설화

- 설총의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에게 바른 정치를 강조함

-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인질 제도로 상수리 제도 시행

제33대 성덕왕 (702년~737년)

-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토지 지급 →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

- 발해 공격 시도

제35대 경덕왕 (742년~765년)

-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의 명칭을 시중으로 변경

- 군현과 관직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편

- 국학의 명칭을 태학감으로 변경

- 국학 내에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

- 불국사, 석굴암 축조

- 성덕대왕 신종 주조 시작

- 신문왕 떄 폐진 되었던 녹읍이 부환 되고 관료 전이 폐지됨

석굴암

제36대 혜공왕 (765년~780년)

- 대공의 난과 96각간의 난

- 제35대 경덕왕 때 주조하기 시작한 성덕대왕 신종의 제작을 완성

- 김지정의 난으로 피살  

신라 중대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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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더웠나 싶을 정도로 벌써 날씨가 쌀쌀하네요

아니 가을이 왔나? 싶게 벌써 날씨가 추워져 겨울 같네요ㅠ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밤낮 기온차 많이 나니깐 겉옷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ㅋ

 

오늘은 하루하루 좋아지는 여수 종포 거리에 다녀왔습니다!

여수 꼭 가볼만한 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수 밤바다! 3년 전, 2년 전, 1년 전 계속 좋아지는 여수!  

여수에 가면 이렇게 루프탑 위에서 이렇게 바다를 보면서 음식도 먹고, 술~ 커피도~ 너무 좋네요ㅋ

여수 밤바다는 포토샵 연습하면서 한번 해봤는데...

너무... 허접하네요 ㅠㅋㅋㅋ

이렇게 포장마차 거리에서 낭만 루프탑!!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도 생겼네요!! 

이런저런 가계들도 많이 생기고!! ㅋ

옆에 턱형 해물 짬뽕도 있네요 ㅋㅋㅋ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니깐요 ㅋㅋ

 

날씨가 좋으니깐 이렇게 야외 테라스에서 친구들 연인들이랑 맛있는 먹는 가게도 있네요 ㅋ

진짜 다음에 가족들하고 한번 와야겠어요 ㅋ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만화가의 대가 허영만 선생님의 벽화 갤러리도 있습니다ㅋ

그냥 벽보다 뭔가가 그려져 있으니깐 너무 좋네요 ㅎ

 

그 외에도 이런저런 그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ㅋ

이렇게 위로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인데 

카페들입니다! 

카페가 너무 이쁘게 되어있습니다

루프탑 앞에 가서 사진도 찍고!

원래 저기에 불도 켜주는데 저는 너무 늦게 가서 불은 올라가는 길에 딱! 하고 꺼졌습니다 ㅋ

 

불은 꺼졌지만 그래도 올라가서 사진도 찍어봤습니다!!

진짜 바다가 있어서 너무 이쁘네요 ㅋㅋ

아는 분이 순천에 있는데 순천에도 순천만, 순천만 정원 등등 많이 있는데...

역시 바다가 없으니깐 관광지로서 조금 아쉽네요 ㅠ

쭈욱~ 가파른 계단을 열심히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 보니깐.. 이렇게 엘리베이터도 있네요 ㅋㅋㅋ

힘들게 올라가지 마시고 엘레베이터 타고 편하게 올라가세요!! ㅋ

아!! 근데.. 또 계단을 올라가면서 보는 매력 또한 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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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과 부흥 운동 (663년)

고구려의 멸망 과정

- 백제가 멸망한 후, 665년 고구려의 권력자 연개소문이 사망, 지배층에서 내분이 발생

-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이 두 동생 연남건, 연남산과 불화하는 과정에서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

-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도 남쪽의 12성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

- 나·당 연합군의 공격

- 1년 간 저항하였으나 결국 평양성이 함락, 고구려가 멸망 (668년)

- 당나라는 고구려 영토 내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

고구려 부흥 운동

- 670년 검모잠이 한성을 거점으로 봉기한 후,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을 왕으로 옹립

- 같은 해 고무연 또한 신라군과 연합하여 압록강을 건너 안시성을 거점으로 요동 지역을 공략

내분 그리고 안승의 신라 투항

- 한성에서 안승과 검모잠 간의 불화 끝에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

- 신라는 투항한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에 안치시킴

- 요동에서 활약하던 고연 무의 부흥 군 또한 당나라군에 패배하면서 신라에 투항

- 고구려 부흥군은 독자적인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신라군에 종속되어 활동

- 신라는 금마저에 안치한 안승과 고구려 유민들의 자치 국가인 보덕 국의 존재를 인정, 안승을 보덕 국왕으로 책봉

- 신라가 당나라와의 군사적 대결에서 고구려 유민의 힘을 활용하기 위한 방책 

나·당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 (676년)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

- 당나라는 신라와 동맹을 맺으면서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신라의 영역으로 인정하기로 약속

- 백제와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한반도 남부에 계속 군대 유지

- 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백제의 옛 영토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

- 663년 당나라는 신라 영토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신라 문무왕을 계림 주 대도독으로 임명

-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에 안동 도호부 설치

- 안동 도호부로 하여금 웅진 도독부와 계림 대도독부를 관장하는 방식으로 운영

당나라에 대항하는 신라

-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금마저에 안치하고 고구려왕으로 책봉하여 고구려 유민을 활용 (670년)

- 신라군이 백제 지역에 쳐들어가 사비성을 함락하고 웅진 도독부를 무력화시킴

- 신라는 백제의 옛 수도인 사비 지역을 중심으로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운영

- 백제 지역에서 고구려 유민의 자치를 허용하고, 보덕국을 세운 후 안승을 보덕 국왕으로 임명

신라 VS 당나라

- 마전·적성전투 :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 군이 연합하여 마전, 적성에서 당나라군을 격파

- 매소성 전투 : 이근행이 이끄는 신라군이 매소성에서 당나라군을 격파

- 기벌포 전투 : 신라군이 설인귀가 이끄는 당의 수군을 기벌포에서 격파 

- 나·당 전쟁에서 승리 (676년)

삼국의 통일 완성 (676년)

- 당나라는 평양에 설치된 안동 도호부를 요동성으로 옮기면서 한반도에서 물러남

-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지역 이남의 땅을 확보, 삼국 통일 완성

- 삼국 통일로 인해 700년 간 갈라져 있던 민족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는 토대가 마련됨

- 삼국통일의 한계 : 외세에 의존하여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 영토가 크게 축소되었다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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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멸망과 부흥 운동 (660년~663년)

백제의 멸망 과정

- 신라 진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김춘추를 보내 나·당 동맹 체결 (648년)

- 진덕여왕은 당 고종에게 오언 태평 송을 바침 (650년)

-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

- 태종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신라 국왕

- 백제에 큰 원한을 품고 있던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나·당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백제를 공격

-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은 해로를 통해, 김유신의 5만 군사는 육로를 통해 백제를 공격

- 김유신의 5만 대군이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싸워 승리

- 신라의 화랑인 관창이 16살의 나이로 백제군과 용맹이 싸우다 전사한 이야기가 전함

- 나·당 연합군이 합세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백제 멸망 (660년)

-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 (660년)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다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 운동거점(임존성)

- 복신, 도침, 흑치상지등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하고 부흥 운동을 전개

- 달솔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거점으로 3만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당나라군을 공격

-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200여 성을 회복

-  왕족인 복신이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을 거점으로 활약하여 20여 성을 회복

- 백제 부흥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당나라는 유인궤를 파견하여 신라군과 함께 부흥 군 진압에 나섬

- 백제와 오랫동안 친선을 유지하던 일본이 보낸 지원군이 백제 지역에 도착

내분으로 와해된 백제 부흥군

- 백제 부흥 군의 내분이 발생하면서 복신이 승려 도침을 죽임

- 왕자 부여풍과 복신 사이에도 불화가 일어나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고 고구려로 망명

백강 전투의 패배와 부흥 운동의 실패

- 3만 명 규모의 일본군과 백제 부흥 군이 금강 하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전멸

- 백강 전투의 대패로 인해 백제 멸망 후 4년 동안 이어진 백제 부흥 운동은 좌절

당나라의 신라 지배 야욕 (663년)

- 당나라는 신라 영토 내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에게 계림 대도독의 자리 앉힘 (6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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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연맹 - 6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연맹 왕국

가야의 건국 설화

- A.D.42년 김해 낙동강 유역의 가락 9 간이 구지봉에서 구지가를 부르자, 금궤의 여섯 개의 알이 어린아이로 바뀜

- 가장 큰 아이 - 김수로가 금관가야의 왕이 되고 나머지가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

금관가야 김수로 왕 & 허황후의 결혼

-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 허황후 부모의 꿈에 나타나 가야국의 김수로의 왕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왕비가 됨

전기 가야 연맹의 결성과 해체

3세기 전기 가야 연맹

-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 왕국으로 발전

- 가야 연맹에 속한 6 국가 (금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소가야

- 풍부한 철 생산과 해상 교통의 발달로 낙랑 및 왜의 규슈 지역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이 발달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전기 가야 연맹 해체

- 400년 백제왜·가야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 내물 마립간이 고려군에 도움 요청

-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신라 원조 과정에서 가야 연맹이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고 전기 가야 연맹 해체

후기 가야 연맹의 결성과 멸망

5세기 후기 가야 연맹

- 가야의 여러 국가들은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결집 시도

- 5세기 후반 경북 고령의 대가야의 주도로 후기 가야 연맹이 결성

- 대가야 중심의 후기 가야 연맹은 6세기 초에 이르러 백제, 신라와 대립할 정도로 성장

- 대가야는 백제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신라의 법흥왕과 결혼 동맹을 체결

- 결혼 동맹은 대가야 이뇌 왕과 신라의 이찬 비 조부의 딸이 혼인한다는 내용

가야 연맹이 신라에 의해 멸망

-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김구해가 신라 법흥왕에 투항하며 금관가야 멸망 (532년)

- 대가야는 백제, 왜와 연합하여 신라와 대립

- 대가야는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 때 신라 진흥왕 때 이사부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 (562년)   

- 결국 가야 연맹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연맹 국가 단계에서 소멸

가야 연맹의 경제와 문화

- 변한 시절부터 벼농사가 발달하고 철 생산이 풍부하였고, 이를 낙랑과 왜 등에 수출

- 덩이쇠라고 하는 철기를 화폐처럼 사용하였으며, 국제 무역품으로 활용

- 중계 무역과 농업이 발달함

- 가야의 뛰어난 토기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스에키 토기 발달에 영향을 줌

- 가야의 금동관과 모양이 비슷한 일본의 금동관 출토 (일본에 대한 가야 문화의 영향력 확인)

- 가야금(가얏고) 대가야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12현의 악기

- 가실왕은 자신이 총애하는 연주자 우륵에게 12곡을 짓게 함

- 우륵은 대가야가 멸망하기 전 신라에 투항하여 진흥왕의 명으로 여러 곡 제작

- 고분 유적 :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의 유적), 고령 지산동 고분군(대가야의 유적)

- 대표적 유물 : 금동관, 철제 무기와 갑옷, 가야 토기, 덩이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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