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초기의 대외 관계
- 당나라와의 관계 : 제2대 무왕 때는 적대적 관계 → 8세기 후반 제3대 문왕 때 관계 개선·교류 확대
- 신라와의 관계 : 대립 관계 : 1.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에 적대적, 당나라의 분열 정책으로 군사적 충돌, 행장 사건
2. 교류 관계 : 제3대 문왕 때 신라도 개설
- 돌궐과의 관계 : 친선 관계 (당나라 견제 목적)
- 일본과의 관계 : 친선 관계 (신라 견제 목적)
발해의 건국
제1대 고왕 (대조영) (698년~719년)
- 연호 : 천통
-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며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698년)
- 대조영이 713년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 받은 후 국호를 발해로 변경
-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의 대부분은 말갈인
발해의 발전 (8세기)
제2대 문왕 (대무예) (719년~737년)
- 연호 : 인안
- 대조영의 아들
- 일본에 서신과 국서를 보내면서 친선 관계 수립
- 일본에 보낸 국서의 내용에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드러냄 (우리는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았다)
- 흑수말갈이 발해에 알리지 않고 당나라에 충성을 맹세하자, 발해 무왕이 크게 분노
- 분노한 무왕은 동생 대문예를 보내 흑수말갈 공격 시도
- 동생 대문예가 무왕의 결정에 반대며 당나라로 망명
- 무왕은 당나라 현종에게 동생 대문 예의 소환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산둥 반도의 덩저우를 공격 → 자사 위준을 죽이고 덩저우를 함락
- 당나라는 신라 성덕왕에게 원군 요청, 신라군 10만 명이 출전하였으나 폭설로 실패
제3대 문왕 (대흠무) (737년~793년)
- 연호 : 대흥
- 대무예의 아들
- 상설 교통로인 신라도 개설
- 동모산을 떠나 중경 현덕부 → 상경 용천부 → 동경 용원부로 이동 (문왕 사후 제 5대 성왕 때 상경 용천부로 재천도)
- 당의 중앙 관제인 3성 6부제 도입
- 발해 수도 상경에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주작대로를 설치
- 자신을 황상, 전륜성왕, 천손이라고 표현하며 위상을 과시
- 당나라는 762년에 기존의 발해군왕을 발해국 왕으로 승격시킴
- 국립 대학인 주자감을 설립
-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을 고려 국왕이라고 표현함
발해의 전성기
제10대 선왕 (대인수) (818년~830년)
- 연호 : 건흥
- 발해 역사상 최대 영토 확보
- 영토 확장에 따라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구역 마련
-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음
-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른 빈공과에 신라 다음으로 많은 급제자를 낸 시기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다툼 : 쟁장사건
- 발해와 통일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갈등한 사건
- 당나라는 신라와의 오랜 관계를 내세워 이를 거절함
- 이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갈등을 엿볼 수 있음
- 최치원의 사불허북국거상표 : 통일 신라의 최치원은 이 사건 후 당나라 황제에게 '사불허북국거상표'라는 감사 글을 씀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
- 10세기 초반 거란이 중국 5대 10국의 분열기를 이용하여 크게 성장
- 거란의 야율아보기(거란의 황제)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요나라를 건국
- 발해 마지막 왕인 대인선 때에 거란 야율아보기의 공격으로 발해 멸망
발해 유민들 고려에 귀순
- 발해 멸망 후, 세자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유민들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
- 태조 왕건은 이들을 포용하여 왕족으로 대우함
- 발해 유민들의 부흥 운동으로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정안국 건국 → 요나라의 공격을 받아 986년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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