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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ㅠ

오는 길에도 이렇게 뒤집힌 우산만 3, 4개는 본 것 같아서 더 실감 나네요

 

오늘은 어마어마한 혜택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카카오 뱅크 카드!!

그중 하나로 카카오뱅크 입출금 수수료가 있습니다.

요즘 과자도 껌 하나도 500원 1000원이 넘는 시대에...

수수료 1000원이 별건가? 싶지만..

그 수수료 1000원은 아깝죠..ㅋㅋㅋ

하지만 카카오뱅크 입출금 할 때는 어느 은행에서도 수수료를 내지 않습니다(아직까지는)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가 ATM에 입금을 하려고 갔는데.. 

이렇게 수수료가... 딱하고!! 

저는 처음에 이렇게 나와서 은행 2~3군데를 돌았다는...;;;ㅋㅋ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고.. 

직접 실험을 해본 결과!! 

짜잔!! 

이렇게 수수료 1000원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카카오 뱅크에서 언제 수수료를 붙일지 아직 모르지만!!

아직은 안심하고 이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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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호 변천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신라 중요 왕들의 계보

제1대 혁거세 거서간 (B.C.57년~A.D.4년)

- 신라 건국

제17대 내물 마립간 (356년~402년)

-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 차지

- 박 씨, 석 씨, 김 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선출하였음 → 내물마립간 때부터 김 씨의 왕위 계승 확립

- 대군장을 사용하는 마립간 칭호 사용하기 시작

- 중국 전진과 외교 관계

- 고구려에  내물 마립간의 사촌인 실성을 인질로 파견

- 백제, 가야, 왜 연합군에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원조 요청 (400년)

제18대 실성 마립간 (402년~417년)

- 내물 마립간이 죽은 후, 화백 회의를 통해 사촌인 실성이 왕위에 오름

- 태자 눌지를 시기하여 고구려군을 이용해 살해 시도 → 고구려군은 실성 마립간을 죽이고, 눌지 태자를 왕으로 삼음

제19대 눌지마립간 (417년~458년)

- 충신 박제상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갔던 두 동생 복호와 미사흔이 귀환

- 부자 상속제 확립

-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로 백제 비유왕과 나·제 동맹 체결

- 고구려 승려 묵호자를 통해 불교 전래 (공인은 법흥왕 때)

제21대 소지마립간 (479년~500년)

- 6부의 행정을 구역화함

- 우역을 설치하여 우편 역마 제도 시행

- 수도 경주에 시사 개설

- 결혼 동맹 (백제 동성왕과 결혼 동맹 체결)

신라의 전성기 (6세기)

제22대 지증왕 (500년~514년)

-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확정 (덕업일신 망라사방에서 가져옴)

- 신라에서 처음으로 "왕" 칭호 사용

- 지방 행정 구역을 중국의 제도를 본떠 주, 군으로 정비

- 우경 실시 : 소를 이용해 농사 지음

- 순장 금지 (순장 대용 흙인형 등장)

- 경주에 동시와 동시전 설치

- 이사부 장군을 보내 우산국 복속

- 최초의 소경 설치

제23대 법흥왕 (514년~540년)

- 병부 설치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부 설치)

- 율령 반포, 17 관등제와 백관의 공복 제정

-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 공인

- 상대등 설치 (귀족회의인 화백 회의 의장으로 상대등 설치)

- 금관가야 정복 

- 연호 "건원" 사용

제24대 진흥왕 (540년~576년)

- 연호 : 개국 → 태창(대창) → 홍제

- 한강 유역 확보

- 대가야 정복

- 함경도 진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영토 확장 후 비열홀주 설치 → 황초령비, 마운령비 건립)

-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비, 창녕 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는 순수비가 아님)

- 최고 행정 기관인 품주 설치

- 화랑도 개편

- 역사서 <국사> 편찬

- 고구려 승려 혜량을 맞아들여 불교 교단을 조직

제26대 진평왕 (579년~632년)

- 연호 "건복" 사용

- 위화부(인사 담당), 조부(재정 담당), 예부(의례와 교육) 설치

- 중앙 군단인 녹금서당 설치

- 고구려 온달 격퇴

-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짓게 함

- 수나라 양제의 고구려 침공 →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을 통해 수나라 격퇴

-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일으킨 귀족의 난을 진압

제27대 선덕여왕 (632년~647년)

- 신라 최초의 여왕

- 승려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몽골의 3차 침입 때 불에 타서 목탑 완전 소실)

- 분황사와 영묘사 건립

- 첨성대 건립

- 비담과 염종의 난

제28대 진덕여왕 (647년~654년)

- 김춘추, 김유신의 주도로 관제 정비

- 나·당 동맹 체결

- 당나라에 태평 송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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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중요 왕들의 계보

제1대 온조왕(B.C.18년~A.D.28년)

- 고구려 주몽의 친아들 유리가 왕위를 계승하자 온조는 형인 비류와 남쪽으로 이동

- 한강 유역을 도읍으로 백제 건국

제8대 고이왕 (234년~286년)

- 낙랑군, 대방군을 몰아내고 한강 유역을 차지

- 6 좌평 제도와 16 관등제 마련

- 공복제 실시 (자색(1등급~6등급), 비색(7등급~11등급), 청색(12등급~16등급) 착용)

- 율령 반포

- 형제 상속제 확립

- 남당(왕과 귀족이 회의하던 장소) 설치

제13대 근초고왕 (346년~375년)

- 부자 상속제 확립

- 역사서 <서기> 편찬 (박사 고흥)

- 요서, 산둥, 큐슈 지역으로 진출하며 대외 활동 전개

- 중국의 동진 및 왜와 활발히 교류

- 왜의 왕에게 "칠지도"(칼) 전함 → 칠지도를 전하며 후왕(제후국의 왕), "왜왕"이라는 표현 사용

제15대 침류왕 (384년~385년)

- 불교 공인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가 입국하여 불교 전함)

제20대 비유왕 (427년~455년)

- 나·제 동맹 체결 (433) (신라의 눌지 마립간과 나제 동맹 체결)

제21대 개로왕 (부여경) (455년~475년)

- 장수왕이 침입하여 신라에 원조를 요청, 하지만 수도인 한성이 함락

- 개로왕 고구려군에 피살됨

제22대 문주왕 (475년~477년)

- 수도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되어 웅진(공주)으로 천도 (475년)

- 국가 위기 속 왕권이 약화되어 병관좌평 해구에게 피살 (477년)

제24대 동성왕 (479년~501년)

- 신라 소지 마립간과 결혼 동맹 체결 (493년)

- 탐라국(제주도) 복속 

- 신흥 귀족인 위사좌평 백가의 난으로 피살

제25대 무령왕 (501년~523년)

- 지방에 22담로 설치

- 중국 남조 양나라와 교류하면서 사신 파견

- 양나라로부터 "영동 대장군 백제 사마 왕"의 시호 받음

- 양직공도 : 양나라를 방문한 백제 사신의 모습

- 무령왕릉 : 중국 남조의 무덤 양식인 벽돌 무덤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견)

- 가야 지역으로 진출하여 섬진강 일대 확보, 경남 서해안까지 진출

제26대 성왕 (523년~554년)

- 웅진(공주)을 떠나 백강 유역의 사비(부여)로 천도 (538년)

- 국호를 백제에서 남부여로 변경

- 중앙 관청을 22부로 확대

- 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정비

- 인도를 다녀온 승려 겸익을 맞이하여 불교 교단 정비

- 귀족 노리사치계를 왜에 보내 불경과 불상을 전하며 불교 전파

-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양원왕)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 회복

- 백제는 한강 하류, 신라는 한강 상류를 나누어 차지

- 진흥왕이 한강 하류를 공격하여 신라에게 한강을 뺴앗김

-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신라 매복에 걸려 전사 (554년)

- 비유왕+눌지 마립간 (나제 동맹 433년), 동성왕+소지 마립간 (결혼 동맹 493년) → 결렬됨(554년)

제30대 무왕 (600년~641년)

- 서동요의 주인공

- 익산에 미륵사 건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 부여에 왕흥사 건립

- 익산 천도 시도 (실패)

백제의 멸망 (7세기)

제31대 의자왕 (641년~660년)

- "해동증자"의 칭호 

- 고구려와 유대하여 신라를 압박하고, 대야성 등 40여 개 성을 함락

- 대야성 전투 (642년) : 백제 윤충이 대야성(경남 합천)을 공격

- 정치적 문란과 지배층의 향락으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

- 황산벌 전투 : 말 목 자른 김유신의 신라군 VS 계백의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전투 (패배)

- 당나라군과 김인문의 신라군이 금강 하구를 침입하여 사비성 함락 (660년)

- 의자왕과 3000 궁녀가 낙화암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함 (백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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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동명(성) 왕 (고주몽) (B.C.37년~B.C.18년)

- 부여 출신의 유이민

- 압록강 유역 졸본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 건국

제2대 유리왕 (B.C.19년~A.D.18년)

- 화의, 치희 두 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화희 때문에 떠나버린 치희를 그리워하며 "황조가"를 지음

- 졸본성 → 국내성으로 천도

제3대 대무신왕 (무휼) (18년~44년)

- 동부여에 큰 타격을 입히고 고구려의 영토를 확대

- 대무신왕의 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일화가 유명

제6대 태조왕 (53년~146년)

- 계루부 고씨의 독점적 왕위 계승 (아직은 형제 상속)

- 5부족 체제 → 5부 체제로 발전

- 옥저 정복, 동예의 대부분의 지역 복속

제9대 고국천왕 (179년~196년)

- 부자 상속제 확립

- 5부의 행정 구역화 (동·서·남·북·중)

-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

- 진대법 실시 (곡식을 빌려주는 빈민 구휼 제도)

제11대 동천왕 (227년~248년)

- 삼국 시대의 분열을 이용하여 위나라 및 오나라와 교류

- 위나라를 도와 공손 씨 세력을 멸망시킴(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됨)

- 위나라가 방심한 틈을 타 서안 평 공격

-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 수도 주위의 환도산성 함락

제15대 미천왕 (을불) (300년~331년)

- 왕족으로서 은거해 살던 소금장수 을불이 왕이 됨

- 서안 평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선비족의 모용씨를 격퇴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

- 낙랑군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축출하여 영토 확장

제16대 고국원왕 (사유) (331년~371년)

- 전연 선비족 모용황의 침입으로 수도의 환도산성 함락

-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던 근초고왕의 평양성 침공으로 고국원왕 전사 (371년)

제17대 소수림왕 (371년~384년)

- 중국 전진과 수교

- 불교 수용 (전진의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가 수용됨)

- 태학 설립 (최고 교육 기관)

- 율령 반포 (왕권 강화)

제19대 광개토대왕 (담덕) (391년~413년)

- 연호 "영락" 사용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

- 동쪽으로 동부여 정복과 동예의 잔여 세력 정복, 서쪽으로 후연 선비족 모용씨 격파, 남쪽으로 백제 위례성 공격,      북쪽으로 숙신(거란), 비려(여진) 정벌

- 시호 : 국강상 광개토 경 평안 호태왕 (호태왕=공개 토대 왕)

- 신라 원조 (신라와 고구려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호우명 그릇")

- 전기 가야 연맹 해체 (광개토대왕의 신라 원조 과정에서 공격을 받아 연맹체가 해체됨)

제20대 장수왕 (거련) (413년~491년)

-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만주 지린성)

- 중국의 분열 상태를 이용하여 중국의 남조(송), 북조(북위)와 각각 교류

- 만주 국내성 → 평양 천도 (427년)

- 경당 설립 (지방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예와 한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

- 백제 공격 (백제의 개로왕(부여경)을 죽임

- 충주 고구려비 건립 (축북 충주)

- 만주 정복 활동 (서북쪽 흥안령 일대까지 영토 확장)

제21대 문자왕(=문자명왕) (491년~519년)

- 북부여 정복 (부여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역사상 최대 영토 확보)

제24대 양원왕 (평성) (545년~559년)

- 한강 유역 상실 (신라·백제 연합군에 패하여 한강 유역 상실) (551년)

제27대 영류왕 (618년~642년)

- 천리장성 축조 (당나라를 대비하여 천리장성 축조)

- 연개소문의 권력 장악

제28대 보장왕 (642년~668년)

- 고구려의 마지막 왕

- 연개소문의 대당 강격 책으로 인하여 당나라와 갈등

- 당나라 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

- 당나라 대군을 맞아 양만춘의 안시성에서 격퇴 (안시성 싸움)

고구려 멸망 (668년)

-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세 아들 간의 내분으로 국가의 혼란

- 고구려의 국력이 쇠퇴해지고,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인 평양성 함락 → 고구려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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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의 의도

□ 불교를 받아들이고, 교육 기관을 세우는 왕의 진짜 의도는?

□ 왕이 자신을 황제라 칭하고,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진짜 의도는?

□ 왕이 수도를 옮기거나 옮기려 한다면 진짜 의도는?

□ 관리들의 공복을 제정하고 율령을 정비하는 왕의 진짜 의도는?

고대국가(중앙 집권 국가)의 특징

왕권 강화 - 부족 간 합의 추대 방식→형제 상속→부자 상속

율령 반포 - 율령 반포 과정에서 관등제 및 관복제를 정비

불교 수용 - 중국에서 고등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들의 사상을 하나로 통합, 왕권 강화 확립

정복 전쟁 -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영토 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

각 나라 중요 왕

고구려 - 제1대 동명(성)왕→제9대 고국천왕→제15대 미천왕→제17대 소수림왕→제19대 광개토대왕→    제20대 장수왕

백제 - 제1대 온조왕→제8대 고이왕→제13대 근초고왕→제15대 침류왕→제25대 무령왕→제26대 성왕→  제30대 무왕→제31대 의자왕

신라- 제1대 혁거세 거서간→제17대 내물 마립간→제19대 눌지 마립간→제22대 지증왕→제23대 법흥왕→제24대 진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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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위치 - 만주 쑹화강 유역  // 국가 형태 - 연맹 왕국(5 부족 연맹체) 왕+마가,우가,저가, 구가 

지배층 - 왕, 마가, 우가, 저가,구가 (사출도)  // 경제 - 반농 반목, 말, 주옥, 모피 (특산물) 

제천행사 - 영고 (12월), 수렵 사회의 전통  // 사회 모습 - 순장, 1 책 12 법, 우제점복, 형사 취수제

이후 역사 - 동부여 멸망(by 고구려 광개토대왕), 북부여 멸망(by 고구려 문자왕)

(초기) 고구려

위치-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 지역//국가 형태- 연맹 왕국(5 부족 연맹체) 계루부, 소노부, 순 노부, 절노부, 관노부

지배층 - 왕, 상가, 고추 가등 대가(밑에 사자, 조의, 선인) // 경제 - 주변의 소국을 약탈, 약탈물을 부경에 보관

제천행사 - 동맹(10월), 국동대혈에서 거행 // 사회 모습 - 서옥제(예서제), 1 책 12 법, 형사 취수제

이후 역사 - 나·당 연합군에 멸망(668)

옥저

위치 - 함경도의 동해안 지역 // 국가 형태 - 군장 국가 // 지배층 - 군장(읍로, 삼로)                                              경제 - 토지 비옥, 소금과 해산물 풍부, 고구려에 약탈당함 // 제천행사 - 전하지 않음                                          사회 모습 - 민며느리제(예부제), 가족 공동묘(목곽) // 이후 역사 - 고구려, 태조왕에게 멸망

동예

위치 -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 지역 // 국가 형태 - 군장국가 // 지배층 - 군장(후, 읍군, 삼로)                                      경제 - 방직 기술 발달, 단궁, 과하마, 반어피(특산물) // 제천행사 - 무천(10월)                                                    사회 모습 - 족외혼, 책화(영역 중시), 철자·여자형 집터                                                                                   이후 역사 - 고구려 태조왕 때 대부분 복속당하고,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잔여 세력 멸망

삼한

위치 -마한(경기, 충청, 전라), 변한(낙동강 하류), 진한(경북 지역) //국가 형태 - 연맹 왕국(마한의 목지국 중심), 군장국가 지배층 - 왕(목지국에서 배출), 대군장(신지, 견지), 소군장(읍차, 부례) //경제 - 벼농사 발달(두레), 철 풍부(변한)            제천행사 - 수릿날(기풍제)(5월), 계절제(상달제)(10월), // 사회 모습 - 소도(천군의 영역)→제정 분리 사회, 귀틀집, 주구묘  이후 역사 - 마한은 백제로 발전, 변한 은 가야로 발전, 진한은 신라로 발전

초기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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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발전의 단계

군장 국가(왕이 존재하지 않음)       →  연맹 왕국(왕권이 약함)       →  중앙 집군 국가(왕권이 강함)
옥저, 동예 고조선, 부여,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고조선의 건국 : 단군왕검이 건국(B.C.2333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 시대에 강력한 세력의 군장 출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짐

일연의 <삼국유사>(고려), 서거정의 <동국통감>(조선) 등의 기록을 근거로 B.C. 2333년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

고조선의 건국 시조인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는 고려 원나라 간섭기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

고조선과 단군 이야기에 관한 기록

<삼국유사> 일연, 고려 제25대 충렬왕//<제왕운기> 이승휴, 고려 제25대 충렬왕//

<세종실록 지리지> 국가 기록, 조선 제6대 단종//<응제시주> 권람, 조선 제7대 세조//

<동국여지승람> 노사신, 조선 제9대 성종//<동국통감> 서거정, 조선 제9대 성종//

중국 문헌 - <관자> 관중, 충추시대//<한서> 반고, 후한

고조선의 세력 범위와 대표적인 유물

- 고조선은 라오닝(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

- 점차 주변 지역을 통합하면서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한반도에서 랴오닝으로 이동한 게 아님)

- 만주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

-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려주는 4가지 유물: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탁자식 고인돌

고조선의 발전

중국에서 기자가 망명 (기자 조선 시대)

- 중국 상나라(은나라)가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은나라 사람 기자가 고조선으로 넘어옴

- 기자가 단국조선에 이어 고조선을 다스리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성한 국가의 기틀을 마련

- 기자는 백성들에게 예의와 농사, 누에치기와 길쌈을 가르치고 8 조법을 만들었다고 함(반고, <한서>)

-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그 실체를 인정하고 기자를 숭상하는 의식이 확산

- 20세기에 민족주의 의식의 강화 → 학계에서 기자 동래설의 불분명함을 이유로 그 실체 부정

8 조법 (현재 3개 조목만 전함)

-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 여자들은 모두 정조를 지키고... 란 대목도 엿보임

중국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해짐

- B.C.5세기 - 중국으로부터 철기 문화 등 선진 문물을 수용

- B.C.4세기 - 고조선은 요서 지방을 경계로 중국 전국 시대의 강국인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

요동 지방에서 한반도로 이동

- B.C.3세기 - 연나라 진개의 침략으로 요동 지방에서 서방 2천 리를 빼앗기고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

               - 이동설 : 고조선의 중심지가 원래 요동이었으나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학설

               - 부왕, 준왕 등의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

               -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둠

고조선의 멸망 : 한 무제에 의한 멸망과 한사군 설치

한 무제의 침입 (B.C. 109년)

-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한 무제는 위만 조선의 중계 무역 및 흉노와의 교류 등에 불만을 품음

- 전쟁 전, 한 무제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 한나라를 섬길 것과 중계 무역을 금할 것을 요구함

- 우거왕이 거부하자, 한나라는 성하를 요동동부도위에 임명하면서 위만 조선을 자극함

- 분노한 우거왕이 군사를 보내 섭하를 죽이자, 한 무제가 이를 빌미로 위만 조선을 침공

- 한나라의 누선 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가 군사를 이끌고 침공 → 위만 조선이 격렬하게 저항함

- 고조선의 내분과 멸망(B.C. 108년)

- 위만 조선이  한나라군에 맞서 1년간 강력하게 저항하였으나 지배층 사이에 내분이 발생

- 내분 과정에서 니 계상 삼이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죽임

- 삼(참)이 한나라에 항복한 후에도 고조선의 성기가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결국 멸망함

한사군이 설치됨

- 한나라는 멸망한 고조선의 영토 안에 네 개의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력 강화 시도

- 한사군 : 낙랑군, 임둔군, 진번 군, 현도군

- 한나라 지배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 → 생산력 증가, 중국 문화의 확산 등

한사군의 변천

- B.C.82년에 진번 군은 낙랑군에 편입되고, 임둔군 또한 현도군에 흡수됨 → 낙랑과 현도만 존재

- 한반도 안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낙랑군은 313년에 고구려 제15대 미천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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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기 시대(B.C.5세기경부터)

○ 철기 문화의 시작 - 중국 전국 시대 혼란기에 혼 반도로 이주한 유이민을 통해 중국의 철기 문화가 전래됨

                          - 강력한 철기의 등장으로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바뀜 (청동기의 의기화)

                          - 철제 농기구 사용을 통해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철제 무기를 통해 정복 활동이 활발해짐

○ 독자적 청동 문화 - 한반도에 독자적 청동기 문화가 발전 (거푸집이 다수 발견되는 점도 근거)

                          - 대표적인 유물 : 세형동검, 잔무늬 거울 등 (일명 '한국식 청동기')

○ 철기 시대의 토기 - 덧띠 토기, 검은간토기 등 제작

철기 시대의 생활 모습

○ 철기 시대의 주거 변화 - 신석기, 청동기 시대 움집의 화덕이 벽면에 고정된 부뚜막이 등장 (하남 미사리 유적) 

○ 철기 시대의 무덤 - 널무덤(나무관 무덤, 목과 묘), 독무덤(항아리관 무덤, 독널 무덤, 옹관묘) 등이 만들어짐

○ 중국과의 교류 - 한자의 사용 : 경남 창원 다호리에서 붓이 발견→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증거

                      - 중국 화폐의 사용 : 명도전(춘추 전국시대), 반량전(진나라), 오수전(한나라), 왕망전(신나라)등

철기 시대 유적지

○ 경남 창원 다호리 - 붓 출토 (한자 사용의 증거, 중국 문화의 영향 확인)

○ 광주 신창동 - 총 53기의 독널 무덤(옹관묘)을 확인

선사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정리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
없음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 찍기 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덧띠 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손잡이 존재)

붉은 간토기

덧띠 토기

검은간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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