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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벌 귀족의 시대

고려 문벌 귀족의 시대 때 왕 인종

고려 중기의 지배 계층: 문벌 귀족

문벌 귀족

  • 국가 체제가 확립된 제6대 성종 대를 거치며 형성된 지배 계층이 형성되었다.

  • 여러 세대에 걸쳐 중앙에서 고위 관직자들을 배출한 가문 (고려 중기의 지배 세력)

  • 지방 호족 출신, 과거를 통해 진출한 신진 관료, 신라 6두품 출신의 유학자들이 주를 이룬다.

  • 경원 이 씨 (이자겸), 경주 김 씨 (김부식), 해주 최 씨 (최충), 파평 윤 씨 (윤관) 등의 주요 가문이 있다.

문벌 귀족의 특징

  • 과거 제도와 음서제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후, 중앙 관직을 독점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였다.

  • 공음전의 혜택을 통해 경제적 부를 자손에게 세습 (공음전: 5품 이상의 관리에게 지급한 토지로써 자손에게 세습되는 영업 전이 있었다.

  • 권력을 바탕으로 국가나 개인의 토지를 겸병함 (토지 겸병: 남의 토지를 자신의 소유로 합치는 행위)

  •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특권을 누리며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을 보임 (강대국인 금나라에 사대하는 태도)

이자겸의 난 (1126년, 인종 4년)

이자겸의 외척 정치

  • 경원 이 씨 (인천 이 씨)는 대표적 문벌 귀족 가문으로서 제11대 문종 때부터 왕실의 최척이 되어 80여 년간 권력을 장악

  • 이자겸은 제16대 예종과 제17대 인종에 걸쳐 자신의 딸을 왕비로 들이며 외척으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림

  • 대내적으로는 문벌 귀족 중심의 정치, 대외적으로는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금나라 (여진족)에 사대적인 태도를 보임

  •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인종은 왕권을 위협하면서 권력을 휘두르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 시도

이자겸의 난 (이·척의 난) (1126년, 인종 4년)

  • 이자겸과 척준경은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일으켜 궁권을 침입하여 반대파를 죽인 후, 인종을 궁권에 유폐시킴

  • 인종은 병권을 지닌 척준경을 회유하여 이자겸을 제거할 것을 요청하고, 척준경은 이자겸을 체포하여 귀양을 보냄

  • 권력을 잡은 척준경도 곧바로 정지상의 탄핵을 받고 전남 신안 암태도에 유배됨

  • 이로써 경원 이씨 세력의 특권 정치는 몰락하고,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 속에서 문벌 귀족 사회도 동요하게 됨

  • 민심이 극도로 불안해지면서 묘청과 정지상은 서경 길지설을 바탕으로 수도를 서경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1135년, 인종 13년)

승려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

  • 인종의 개혁 시도: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후, 인종은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 세력과 함께 정치 개혁을 추진

  • 김부식 등 개경 세력의 반발 속에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앞세워 지덕이 쇠한 개경에서 서경 (평양)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

  • 묘청은 서경으로 천도하면 금나라가 항복하고 36개 국이 조공을 바칠 것이라고 주장 (36국 내조설)

  • 인종의 동의로 서경 (평양)에 대화궁과 팔성당을 건설하고 천도 준비에 착수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

  • 묘청은 서경 천도와 함께 칭제 건원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 연호 사용) 할 것과 금나라 정벌을 인종에게 건의

  • 김부식 등 개경파는 천도로 인한 기득권 상실과 서경파의 득세를 우려하여 거세게 반발

묘청,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다 (1135년)

  •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

  • 국호 대위국, 연호 천개, 군대 천견충의군 (왕을 옹립하지는 않음)

  • 김부식의 진압: 개경에서 정지상 등 서경 천도파를 숙청한 후 서경으로 진격하여 1년 만에 진압

  • 묘청의 난 진압 후 김부식은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 (1135년~1145년)

개경파 (김부식)

서경파 (묘청, 정지상)

기존 문벌 귀족 세력

지방 출신의 신진 관료 세력

유교

불교, 풍수 지리설 (서경길지설)

신라 계승

고구려 계승

금나라에 대해 사대 주장

북진 정책 (금국 정벌), 자주 의식 (칭제 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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