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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와 고려의 통일 과정

  • 900년 : 후백제 건국 (견훤) // 후 고구려 건국 (궁예)
  • 911년 : 나주 공략 (왕건)
  • 918년 : 고려 건국 (왕건)
  • 926년 : 발해 멸망 (거란에 의해서)
  • 927년 : 견훤의 신라 침입 // 공산 전투 (견훤 승리)
  • 930년 : 고창 전투 (왕건 승리)
  • 934년 : 운주 전투 (왕건 승리)
  • 935년 : 신라 멸망 // 견훤 투항 (아들 신검에게 쫓겨난 견훤, 왕건에게 귀부)
  • 936년 : 일리천 전투 // 황산 전투 → 고려의 민족 통일

제1대 태조 왕건 (918년~943년)

그는 대체 왕건 역활의 또 최수종(4)

  • 연호 : 천수

  • 취민 유도책 - 조세율을 1/10로 낮춤

  • 흑창 설치 (흑창 : 춘대추납을 통한 빈민 구휼 기관)

  • 결혼 정책 (호족층을 포섭하기 위해 유력한 호족의 딸을 왕비로 맞음)

  • 사성 정책 (사성 : 귀순한 호족들이나 공신들에게 왕 씨 또는 다른 성을 하사)

  • 역분전역 분전 지급 (통일 과정에서 협력한 호족 2천여 명을 개국공신으로 임명, 공신들의 역할과 인품을 고려하여 역 분전이라는 토지 지급)

  • 사심관 제도 

- 중앙의 고위 관리를 출신 지역의 사심관으로 임명

-사심관으로 임명된 고관은 해당 지역의 행정과 치안 문제가 발생시 연대 책임을 짐

- 조선 건국 후 유향소와 경재소로 명맥이 이어지면서 분화 발전

  • 기인 제도

- 지방 호족과 향리의 자제를 뽑아 수도 개경에 두고 해당 지역 업무를 자문하게 하는 제도

- 일종의 인질 성격을 띠고 있으며, 통일 신라 상수리 제도에 기원을 두고 발전함

  • 고려 국호 사용 (고구려를 계승함)

  •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북진 정책의 기지로 활용

  • 중앙 정부와 별개의 독립적인 행정 기구들을 서경에 설치

  • 1136년 서경에서 일어난 묘청의 난이 진압되면서 서경에 설치된 대부분의 관서가 폐지됨

  • 북쪽으로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국경선 확보

  •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규정하고 적대 정책을 폄

  • 만부교 사건 : 거란이 고려와 친선 관계를 맺기 위해 낙타 50마리를 선물하였는데, 태조 왕건이 거란 사신들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를 개경 만부교 다리 아래에 묶어 굶겨 죽임

  • 이 사건으로 인해 거란과 관계가 끊어지고, 이후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

  • 연등회와 팔관회를 매우 중시하여 성대히 거행함

  • 국가를 정신적으로 이끌수 있는 최고 승려를 뽑아 국사, 왕사로 책봉

  • 풍수지리설 중시

  •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10가지 정책 방향 - 훈요십조

  •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정계>, <계백료서>

제2대 혜종 (943년~945년)

  • 태조 왕건과 장화 왕후 오 씨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

  • 태조 왕건의 결혼 정책으로 인해 제2대 왕으로 즉위한 후에도 다른 왕자들의 위협을 받음

  • 945년 호족인 왕규가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 원군을 왕으로 삼고자 난을 일으켰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병사

제3대 정종 (945년~949년)

  • 태조 왕건의 둘쨰 아들

  • 서경 지역을 세력으로 하는 왕식렴이 왕규의 난을 진압한 후에 왕식렴의 도움으로 즉위

  • 개국 공신들과 개경 귀족들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서경 천도 추진을 시도하였으나 병사함

  • 불법을 배우는 승려들을 위해, 일종의 장학 재단인 광학보 설치

  •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30만의 광군을 조직, 지휘 기구인 광군사 설치

  • 광군은 이후 제8대 현종 때 지방을 지키는 주현군 휘하의 일품군으로 개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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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초기의 대외 관계

- 당나라와의 관계 : 제2대 무왕 때는 적대적 관계 → 8세기 후반 제3대 문왕 때 관계 개선·교류 확대

- 신라와의 관계 : 대립 관계 : 1.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에 적대적, 당나라의 분열 정책으로 군사적 충돌, 행장 사건 

2. 교류 관계 : 제3대 문왕 때 신라도 개설

- 돌궐과의 관계 : 친선 관계 (당나라 견제 목적)

- 일본과의 관계 : 친선 관계 (신라 견제 목적) 

발해의 건국

그는 누구인가? 발해도 역시 또 최수종

제1대 고왕 (대조영) (698년~719년)

- 연호 : 천통

-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며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698년)

- 대조영이 713년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 받은 후 국호를 발해로 변경

-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의 대부분은 말갈인

발해의 발전 (8세기)

제2대 문왕 (대무예) (719년~737년)

- 연호 : 인안

- 대조영의 아들

- 일본에 서신과 국서를 보내면서 친선 관계 수립

- 일본에 보낸 국서의 내용에서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드러냄 (우리는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유속을 이어받았다)

- 흑수말갈이 발해에 알리지 않고 당나라에 충성을 맹세하자, 발해 무왕이 크게 분노

- 분노한 무왕은 동생 대문예를 보내 흑수말갈 공격 시도

- 동생 대문예가 무왕의 결정에 반대며 당나라로 망명

- 무왕은 당나라 현종에게 동생 대문 예의 소환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산둥 반도의 덩저우를 공격 → 자사 위준을 죽이고 덩저우를 함락

- 당나라는 신라 성덕왕에게 원군 요청, 신라군 10만 명이 출전하였으나 폭설로 실패

제3대 문왕 (대흠무) (737년~793년)

- 연호 : 대흥

- 대무예의 아들

- 상설 교통로인 신라도 개설

- 동모산을 떠나 중경 현덕부 → 상경 용천부 → 동경 용원부로 이동 (문왕 사후 제 5대 성왕 때 상경 용천부로 재천도)

- 당의 중앙 관제인 3성 6부제 도입

- 발해 수도 상경에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주작대로를 설치

- 자신을 황상, 전륜성왕, 천손이라고 표현하며 위상을 과시

- 당나라는 762년에 기존의 발해군왕을 발해국 왕으로 승격시킴

- 국립 대학인 주자감을 설립

-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을 고려 국왕이라고 표현함

발해의 전성기

발해 전성기(고구려 보다 넓은 영토)

제10대 선왕 (대인수) (818년~830년)

- 연호 : 건흥

- 발해 역사상 최대 영토 확보

- 영토 확장에 따라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구역 마련

-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음

-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른 빈공과에 신라 다음으로 많은 급제자를 낸 시기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다툼 : 쟁장사건 

- 발해와 통일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갈등한 사건

- 당나라는 신라와의 오랜 관계를 내세워 이를 거절함

- 이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발해와 통일 신라의 외교적 갈등을 엿볼 수 있음

- 최치원의 사불허북국거상표 : 통일 신라의 최치원은 이 사건 후 당나라 황제에게 '사불허북국거상표'라는 감사 글을 씀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

- 10세기 초반 거란이 중국 5대 10국의 분열기를 이용하여 크게 성장

- 거란의 야율아보기(거란의 황제)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요나라를 건국

- 발해 마지막 왕인 대인선 때에 거란 야율아보기의 공격으로 발해 멸망

발해 유민들 고려에 귀순

- 발해 멸망 후, 세자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유민들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

- 태조 왕건은 이들을 포용하여 왕족으로 대우함

- 발해 유민들의 부흥 운동으로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정안국 건국 → 요나라의 공격을 받아 986년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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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왕들 (8세기~9세기)

제37대 선덕왕 (780년~785년)

- 혜공왕의 피살로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 → 신라 하대 시작

제38대 원성왕 (785년~798년)

- 무열 왕계 김주원과의 왕위 다툼 끝에 김경신이 무력으로 승리하고 원성왕으로 즉위

- 독서삼품과 실시 : 국학의 졸업 시험 형식 (독서 삼품과 가 우리나라 최초의 과거 시험은 아님)

제41대 헌덕왕 (809년~826년)

- 김헌창의 난, 김범문의 난 진압 → 무열왕계 진골들을 6두품으로 강등

제42대 흥덕왕 (826년~836년)

흥덕왕~문성왕까지 활약한 장보고역의 또 최수종

- 장보고의 건의에 당나라, 일본과의 무역 요충지인 전남 완도에 청해진 설치

- 모든 관등에 따른 복색·거기·기용·옥사 등의 규정을 반포

제45대 신무왕 (839년)

- 장보고의 도움으로 즉위하였으나 병사

제46대 문성왕 (839년~857년)

- 장보고가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들이려다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 장보고가 난을 일으킴

- 장보고의 난을 진압하고 청해진을 폐지

제51대 진성여왕 (887년~897년)

- 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등 잦은 민란 발생

- 각간 위홍과 승려 대구에게 향가집 <삼대 목>을 편찬하게 함

-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를 받아들여 개혁 시도 →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제55대 경애왕 (924년~927년)

-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가 위기 심화

-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고 피살됨

 

신라의 멸망 (10세기)

제56대 경순왕 (927년~935년)

-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 → 신라 멸망 (935년)

- 왕건은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최초의 사심관)

마의태자

- 경순왕의 아들

-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며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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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통일의 주역

제29대 태종 무열왕 (654년~661년)

최수종이 무열왕으로 나온 드라마

-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즉위

- 김춘추의 즉위를 도운 김유신 가문이 기존의 왕비족인 박 씨를 대신하여 왕비족으로 등장

-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킴 (660년)

- 사정부를 설치하여 관리에 대한 감찰 기능 수행

- 갈문왕 제도 폐지

- 중국식 시호 사용

제30대 문무왕 (661년~681년)

- 고구려를 멸망시킴

- 지방의 관리들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 설치

- 나·당 전쟁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 완성

- 14부 중 최고 부서였던 집사부의 장관 시중의 권한을 강화

- 왕과 대립 관계에 있는 귀족들의 회의체인 화백 회의의 의장 상대등의 권한은 약화

- 문무대왕릉 (경북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

신라 중대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제31대 신문왕 (681년~692년)

- 신문왕의 장인 김흥돌의 난을 진압

- 수도 경주에 국립 대학인 국학 설립

- 중앙 정치 조직을 14부로 완성

- 지방 행정 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정비

- 중앙군을 9서당, 지방 군을 10정으로 설치

- 신문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관료 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관료 전은 조세와 공납만을 취급하고 역은 수취할 수 없음

-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대구)로 옮기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함

- 삼국 통일을 이룩한 아버지 문무왕이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경주 감은사 건립을 완성

- 만파식적 설화

- 설총의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에게 바른 정치를 강조함

-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인질 제도로 상수리 제도 시행

제33대 성덕왕 (702년~737년)

-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토지 지급 →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

- 발해 공격 시도

제35대 경덕왕 (742년~765년)

-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의 명칭을 시중으로 변경

- 군현과 관직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편

- 국학의 명칭을 태학감으로 변경

- 국학 내에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

- 불국사, 석굴암 축조

- 성덕대왕 신종 주조 시작

- 신문왕 떄 폐진 되었던 녹읍이 부환 되고 관료 전이 폐지됨

석굴암

제36대 혜공왕 (765년~780년)

- 대공의 난과 96각간의 난

- 제35대 경덕왕 때 주조하기 시작한 성덕대왕 신종의 제작을 완성

- 김지정의 난으로 피살  

신라 중대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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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멸망과 부흥 운동 (663년)

고구려의 멸망 과정

- 백제가 멸망한 후, 665년 고구려의 권력자 연개소문이 사망, 지배층에서 내분이 발생

-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이 두 동생 연남건, 연남산과 불화하는 과정에서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

-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도 남쪽의 12성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

- 나·당 연합군의 공격

- 1년 간 저항하였으나 결국 평양성이 함락, 고구려가 멸망 (668년)

- 당나라는 고구려 영토 내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

고구려 부흥 운동

- 670년 검모잠이 한성을 거점으로 봉기한 후,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을 왕으로 옹립

- 같은 해 고무연 또한 신라군과 연합하여 압록강을 건너 안시성을 거점으로 요동 지역을 공략

내분 그리고 안승의 신라 투항

- 한성에서 안승과 검모잠 간의 불화 끝에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

- 신라는 투항한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에 안치시킴

- 요동에서 활약하던 고연 무의 부흥 군 또한 당나라군에 패배하면서 신라에 투항

- 고구려 부흥군은 독자적인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신라군에 종속되어 활동

- 신라는 금마저에 안치한 안승과 고구려 유민들의 자치 국가인 보덕 국의 존재를 인정, 안승을 보덕 국왕으로 책봉

- 신라가 당나라와의 군사적 대결에서 고구려 유민의 힘을 활용하기 위한 방책 

나·당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 (676년)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욕

- 당나라는 신라와 동맹을 맺으면서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신라의 영역으로 인정하기로 약속

- 백제와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한반도 남부에 계속 군대 유지

- 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백제의 옛 영토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

- 663년 당나라는 신라 영토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신라 문무왕을 계림 주 대도독으로 임명

-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에 안동 도호부 설치

- 안동 도호부로 하여금 웅진 도독부와 계림 대도독부를 관장하는 방식으로 운영

당나라에 대항하는 신라

-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금마저에 안치하고 고구려왕으로 책봉하여 고구려 유민을 활용 (670년)

- 신라군이 백제 지역에 쳐들어가 사비성을 함락하고 웅진 도독부를 무력화시킴

- 신라는 백제의 옛 수도인 사비 지역을 중심으로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운영

- 백제 지역에서 고구려 유민의 자치를 허용하고, 보덕국을 세운 후 안승을 보덕 국왕으로 임명

신라 VS 당나라

- 마전·적성전투 : 신라군과 고구려 부흥 군이 연합하여 마전, 적성에서 당나라군을 격파

- 매소성 전투 : 이근행이 이끄는 신라군이 매소성에서 당나라군을 격파

- 기벌포 전투 : 신라군이 설인귀가 이끄는 당의 수군을 기벌포에서 격파 

- 나·당 전쟁에서 승리 (676년)

삼국의 통일 완성 (676년)

- 당나라는 평양에 설치된 안동 도호부를 요동성으로 옮기면서 한반도에서 물러남

-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지역 이남의 땅을 확보, 삼국 통일 완성

- 삼국 통일로 인해 700년 간 갈라져 있던 민족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는 토대가 마련됨

- 삼국통일의 한계 : 외세에 의존하여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 영토가 크게 축소되었다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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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멸망과 부흥 운동 (660년~663년)

백제의 멸망 과정

- 신라 진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김춘추를 보내 나·당 동맹 체결 (648년)

- 진덕여왕은 당 고종에게 오언 태평 송을 바침 (650년)

-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

- 태종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신라 국왕

- 백제에 큰 원한을 품고 있던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나·당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백제를 공격

-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은 해로를 통해, 김유신의 5만 군사는 육로를 통해 백제를 공격

- 김유신의 5만 대군이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싸워 승리

- 신라의 화랑인 관창이 16살의 나이로 백제군과 용맹이 싸우다 전사한 이야기가 전함

- 나·당 연합군이 합세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백제 멸망 (660년)

-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 (660년)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다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 운동거점(임존성)

- 복신, 도침, 흑치상지등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하고 부흥 운동을 전개

- 달솔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거점으로 3만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당나라군을 공격

-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200여 성을 회복

-  왕족인 복신이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을 거점으로 활약하여 20여 성을 회복

- 백제 부흥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당나라는 유인궤를 파견하여 신라군과 함께 부흥 군 진압에 나섬

- 백제와 오랫동안 친선을 유지하던 일본이 보낸 지원군이 백제 지역에 도착

내분으로 와해된 백제 부흥군

- 백제 부흥 군의 내분이 발생하면서 복신이 승려 도침을 죽임

- 왕자 부여풍과 복신 사이에도 불화가 일어나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고 고구려로 망명

백강 전투의 패배와 부흥 운동의 실패

- 3만 명 규모의 일본군과 백제 부흥 군이 금강 하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전멸

- 백강 전투의 대패로 인해 백제 멸망 후 4년 동안 이어진 백제 부흥 운동은 좌절

당나라의 신라 지배 야욕 (663년)

- 당나라는 신라 영토 내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에게 계림 대도독의 자리 앉힘 (6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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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연맹 - 6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연맹 왕국

가야의 건국 설화

- A.D.42년 김해 낙동강 유역의 가락 9 간이 구지봉에서 구지가를 부르자, 금궤의 여섯 개의 알이 어린아이로 바뀜

- 가장 큰 아이 - 김수로가 금관가야의 왕이 되고 나머지가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

금관가야 김수로 왕 & 허황후의 결혼

-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 허황후 부모의 꿈에 나타나 가야국의 김수로의 왕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왕비가 됨

전기 가야 연맹의 결성과 해체

3세기 전기 가야 연맹

-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 왕국으로 발전

- 가야 연맹에 속한 6 국가 (금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소가야

- 풍부한 철 생산과 해상 교통의 발달로 낙랑 및 왜의 규슈 지역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이 발달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전기 가야 연맹 해체

- 400년 백제왜·가야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 내물 마립간이 고려군에 도움 요청

-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신라 원조 과정에서 가야 연맹이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고 전기 가야 연맹 해체

후기 가야 연맹의 결성과 멸망

5세기 후기 가야 연맹

- 가야의 여러 국가들은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결집 시도

- 5세기 후반 경북 고령의 대가야의 주도로 후기 가야 연맹이 결성

- 대가야 중심의 후기 가야 연맹은 6세기 초에 이르러 백제, 신라와 대립할 정도로 성장

- 대가야는 백제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신라의 법흥왕과 결혼 동맹을 체결

- 결혼 동맹은 대가야 이뇌 왕과 신라의 이찬 비 조부의 딸이 혼인한다는 내용

가야 연맹이 신라에 의해 멸망

-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김구해가 신라 법흥왕에 투항하며 금관가야 멸망 (532년)

- 대가야는 백제, 왜와 연합하여 신라와 대립

- 대가야는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 때 신라 진흥왕 때 이사부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 (562년)   

- 결국 가야 연맹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연맹 국가 단계에서 소멸

가야 연맹의 경제와 문화

- 변한 시절부터 벼농사가 발달하고 철 생산이 풍부하였고, 이를 낙랑과 왜 등에 수출

- 덩이쇠라고 하는 철기를 화폐처럼 사용하였으며, 국제 무역품으로 활용

- 중계 무역과 농업이 발달함

- 가야의 뛰어난 토기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스에키 토기 발달에 영향을 줌

- 가야의 금동관과 모양이 비슷한 일본의 금동관 출토 (일본에 대한 가야 문화의 영향력 확인)

- 가야금(가얏고) 대가야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12현의 악기

- 가실왕은 자신이 총애하는 연주자 우륵에게 12곡을 짓게 함

- 우륵은 대가야가 멸망하기 전 신라에 투항하여 진흥왕의 명으로 여러 곡 제작

- 고분 유적 :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의 유적), 고령 지산동 고분군(대가야의 유적)

- 대표적 유물 : 금동관, 철제 무기와 갑옷, 가야 토기, 덩이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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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호 변천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신라 중요 왕들의 계보

제1대 혁거세 거서간 (B.C.57년~A.D.4년)

- 신라 건국

제17대 내물 마립간 (356년~402년)

-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 차지

- 박 씨, 석 씨, 김 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선출하였음 → 내물마립간 때부터 김 씨의 왕위 계승 확립

- 대군장을 사용하는 마립간 칭호 사용하기 시작

- 중국 전진과 외교 관계

- 고구려에  내물 마립간의 사촌인 실성을 인질로 파견

- 백제, 가야, 왜 연합군에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원조 요청 (400년)

제18대 실성 마립간 (402년~417년)

- 내물 마립간이 죽은 후, 화백 회의를 통해 사촌인 실성이 왕위에 오름

- 태자 눌지를 시기하여 고구려군을 이용해 살해 시도 → 고구려군은 실성 마립간을 죽이고, 눌지 태자를 왕으로 삼음

제19대 눌지마립간 (417년~458년)

- 충신 박제상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갔던 두 동생 복호와 미사흔이 귀환

- 부자 상속제 확립

-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로 백제 비유왕과 나·제 동맹 체결

- 고구려 승려 묵호자를 통해 불교 전래 (공인은 법흥왕 때)

제21대 소지마립간 (479년~500년)

- 6부의 행정을 구역화함

- 우역을 설치하여 우편 역마 제도 시행

- 수도 경주에 시사 개설

- 결혼 동맹 (백제 동성왕과 결혼 동맹 체결)

신라의 전성기 (6세기)

제22대 지증왕 (500년~514년)

-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확정 (덕업일신 망라사방에서 가져옴)

- 신라에서 처음으로 "왕" 칭호 사용

- 지방 행정 구역을 중국의 제도를 본떠 주, 군으로 정비

- 우경 실시 : 소를 이용해 농사 지음

- 순장 금지 (순장 대용 흙인형 등장)

- 경주에 동시와 동시전 설치

- 이사부 장군을 보내 우산국 복속

- 최초의 소경 설치

제23대 법흥왕 (514년~540년)

- 병부 설치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부 설치)

- 율령 반포, 17 관등제와 백관의 공복 제정

-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 공인

- 상대등 설치 (귀족회의인 화백 회의 의장으로 상대등 설치)

- 금관가야 정복 

- 연호 "건원" 사용

제24대 진흥왕 (540년~576년)

- 연호 : 개국 → 태창(대창) → 홍제

- 한강 유역 확보

- 대가야 정복

- 함경도 진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영토 확장 후 비열홀주 설치 → 황초령비, 마운령비 건립)

-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비, 창녕 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는 순수비가 아님)

- 최고 행정 기관인 품주 설치

- 화랑도 개편

- 역사서 <국사> 편찬

- 고구려 승려 혜량을 맞아들여 불교 교단을 조직

제26대 진평왕 (579년~632년)

- 연호 "건복" 사용

- 위화부(인사 담당), 조부(재정 담당), 예부(의례와 교육) 설치

- 중앙 군단인 녹금서당 설치

- 고구려 온달 격퇴

-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짓게 함

- 수나라 양제의 고구려 침공 →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을 통해 수나라 격퇴

-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일으킨 귀족의 난을 진압

제27대 선덕여왕 (632년~647년)

- 신라 최초의 여왕

- 승려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몽골의 3차 침입 때 불에 타서 목탑 완전 소실)

- 분황사와 영묘사 건립

- 첨성대 건립

- 비담과 염종의 난

제28대 진덕여왕 (647년~654년)

- 김춘추, 김유신의 주도로 관제 정비

- 나·당 동맹 체결

- 당나라에 태평 송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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