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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통일의 주역

제29대 태종 무열왕 (654년~661년)

최수종이 무열왕으로 나온 드라마

-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즉위

- 김춘추의 즉위를 도운 김유신 가문이 기존의 왕비족인 박 씨를 대신하여 왕비족으로 등장

-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킴 (660년)

- 사정부를 설치하여 관리에 대한 감찰 기능 수행

- 갈문왕 제도 폐지

- 중국식 시호 사용

제30대 문무왕 (661년~681년)

- 고구려를 멸망시킴

- 지방의 관리들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 설치

- 나·당 전쟁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 완성

- 14부 중 최고 부서였던 집사부의 장관 시중의 권한을 강화

- 왕과 대립 관계에 있는 귀족들의 회의체인 화백 회의의 의장 상대등의 권한은 약화

- 문무대왕릉 (경북 경주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

신라 중대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제31대 신문왕 (681년~692년)

- 신문왕의 장인 김흥돌의 난을 진압

- 수도 경주에 국립 대학인 국학 설립

- 중앙 정치 조직을 14부로 완성

- 지방 행정 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정비

- 중앙군을 9서당, 지방 군을 10정으로 설치

- 신문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관료 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관료 전은 조세와 공납만을 취급하고 역은 수취할 수 없음

-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대구)로 옮기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함

- 삼국 통일을 이룩한 아버지 문무왕이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경주 감은사 건립을 완성

- 만파식적 설화

- 설총의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에게 바른 정치를 강조함

-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인질 제도로 상수리 제도 시행

제33대 성덕왕 (702년~737년)

-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토지 지급 →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

- 발해 공격 시도

제35대 경덕왕 (742년~765년)

- 집사부의 장관인 중시의 명칭을 시중으로 변경

- 군현과 관직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개편

- 국학의 명칭을 태학감으로 변경

- 국학 내에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

- 불국사, 석굴암 축조

- 성덕대왕 신종 주조 시작

- 신문왕 떄 폐진 되었던 녹읍이 부환 되고 관료 전이 폐지됨

석굴암

제36대 혜공왕 (765년~780년)

- 대공의 난과 96각간의 난

- 제35대 경덕왕 때 주조하기 시작한 성덕대왕 신종의 제작을 완성

- 김지정의 난으로 피살  

신라 중대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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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호 변천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신라 중요 왕들의 계보

제1대 혁거세 거서간 (B.C.57년~A.D.4년)

- 신라 건국

제17대 내물 마립간 (356년~402년)

-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 차지

- 박 씨, 석 씨, 김 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선출하였음 → 내물마립간 때부터 김 씨의 왕위 계승 확립

- 대군장을 사용하는 마립간 칭호 사용하기 시작

- 중국 전진과 외교 관계

- 고구려에  내물 마립간의 사촌인 실성을 인질로 파견

- 백제, 가야, 왜 연합군에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원조 요청 (400년)

제18대 실성 마립간 (402년~417년)

- 내물 마립간이 죽은 후, 화백 회의를 통해 사촌인 실성이 왕위에 오름

- 태자 눌지를 시기하여 고구려군을 이용해 살해 시도 → 고구려군은 실성 마립간을 죽이고, 눌지 태자를 왕으로 삼음

제19대 눌지마립간 (417년~458년)

- 충신 박제상의 활약으로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갔던 두 동생 복호와 미사흔이 귀환

- 부자 상속제 확립

-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로 백제 비유왕과 나·제 동맹 체결

- 고구려 승려 묵호자를 통해 불교 전래 (공인은 법흥왕 때)

제21대 소지마립간 (479년~500년)

- 6부의 행정을 구역화함

- 우역을 설치하여 우편 역마 제도 시행

- 수도 경주에 시사 개설

- 결혼 동맹 (백제 동성왕과 결혼 동맹 체결)

신라의 전성기 (6세기)

제22대 지증왕 (500년~514년)

-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확정 (덕업일신 망라사방에서 가져옴)

- 신라에서 처음으로 "왕" 칭호 사용

- 지방 행정 구역을 중국의 제도를 본떠 주, 군으로 정비

- 우경 실시 : 소를 이용해 농사 지음

- 순장 금지 (순장 대용 흙인형 등장)

- 경주에 동시와 동시전 설치

- 이사부 장군을 보내 우산국 복속

- 최초의 소경 설치

제23대 법흥왕 (514년~540년)

- 병부 설치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부 설치)

- 율령 반포, 17 관등제와 백관의 공복 제정

-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 공인

- 상대등 설치 (귀족회의인 화백 회의 의장으로 상대등 설치)

- 금관가야 정복 

- 연호 "건원" 사용

제24대 진흥왕 (540년~576년)

- 연호 : 개국 → 태창(대창) → 홍제

- 한강 유역 확보

- 대가야 정복

- 함경도 진출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영토 확장 후 비열홀주 설치 → 황초령비, 마운령비 건립)

-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비, 창녕 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단양 적성비는 순수비가 아님)

- 최고 행정 기관인 품주 설치

- 화랑도 개편

- 역사서 <국사> 편찬

- 고구려 승려 혜량을 맞아들여 불교 교단을 조직

제26대 진평왕 (579년~632년)

- 연호 "건복" 사용

- 위화부(인사 담당), 조부(재정 담당), 예부(의례와 교육) 설치

- 중앙 군단인 녹금서당 설치

- 고구려 온달 격퇴

-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짓게 함

- 수나라 양제의 고구려 침공 →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을 통해 수나라 격퇴

-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일으킨 귀족의 난을 진압

제27대 선덕여왕 (632년~647년)

- 신라 최초의 여왕

- 승려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 건립 (몽골의 3차 침입 때 불에 타서 목탑 완전 소실)

- 분황사와 영묘사 건립

- 첨성대 건립

- 비담과 염종의 난

제28대 진덕여왕 (647년~654년)

- 김춘추, 김유신의 주도로 관제 정비

- 나·당 동맹 체결

- 당나라에 태평 송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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