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여

위치 - 만주 쑹화강 유역  // 국가 형태 - 연맹 왕국(5 부족 연맹체) 왕+마가,우가,저가, 구가 

지배층 - 왕, 마가, 우가, 저가,구가 (사출도)  // 경제 - 반농 반목, 말, 주옥, 모피 (특산물) 

제천행사 - 영고 (12월), 수렵 사회의 전통  // 사회 모습 - 순장, 1 책 12 법, 우제점복, 형사 취수제

이후 역사 - 동부여 멸망(by 고구려 광개토대왕), 북부여 멸망(by 고구려 문자왕)

(초기) 고구려

위치-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 지역//국가 형태- 연맹 왕국(5 부족 연맹체) 계루부, 소노부, 순 노부, 절노부, 관노부

지배층 - 왕, 상가, 고추 가등 대가(밑에 사자, 조의, 선인) // 경제 - 주변의 소국을 약탈, 약탈물을 부경에 보관

제천행사 - 동맹(10월), 국동대혈에서 거행 // 사회 모습 - 서옥제(예서제), 1 책 12 법, 형사 취수제

이후 역사 - 나·당 연합군에 멸망(668)

옥저

위치 - 함경도의 동해안 지역 // 국가 형태 - 군장 국가 // 지배층 - 군장(읍로, 삼로)                                              경제 - 토지 비옥, 소금과 해산물 풍부, 고구려에 약탈당함 // 제천행사 - 전하지 않음                                          사회 모습 - 민며느리제(예부제), 가족 공동묘(목곽) // 이후 역사 - 고구려, 태조왕에게 멸망

동예

위치 -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 지역 // 국가 형태 - 군장국가 // 지배층 - 군장(후, 읍군, 삼로)                                      경제 - 방직 기술 발달, 단궁, 과하마, 반어피(특산물) // 제천행사 - 무천(10월)                                                    사회 모습 - 족외혼, 책화(영역 중시), 철자·여자형 집터                                                                                   이후 역사 - 고구려 태조왕 때 대부분 복속당하고,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잔여 세력 멸망

삼한

위치 -마한(경기, 충청, 전라), 변한(낙동강 하류), 진한(경북 지역) //국가 형태 - 연맹 왕국(마한의 목지국 중심), 군장국가 지배층 - 왕(목지국에서 배출), 대군장(신지, 견지), 소군장(읍차, 부례) //경제 - 벼농사 발달(두레), 철 풍부(변한)            제천행사 - 수릿날(기풍제)(5월), 계절제(상달제)(10월), // 사회 모습 - 소도(천군의 영역)→제정 분리 사회, 귀틀집, 주구묘  이후 역사 - 마한은 백제로 발전, 변한 은 가야로 발전, 진한은 신라로 발전

초기 국가

 

반응형
반응형

국가 발전의 단계

군장 국가(왕이 존재하지 않음)       →  연맹 왕국(왕권이 약함)       →  중앙 집군 국가(왕권이 강함)
옥저, 동예 고조선, 부여,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고조선의 건국 : 단군왕검이 건국(B.C.2333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 시대에 강력한 세력의 군장 출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짐

일연의 <삼국유사>(고려), 서거정의 <동국통감>(조선) 등의 기록을 근거로 B.C. 2333년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

고조선의 건국 시조인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는 고려 원나라 간섭기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

고조선과 단군 이야기에 관한 기록

<삼국유사> 일연, 고려 제25대 충렬왕//<제왕운기> 이승휴, 고려 제25대 충렬왕//

<세종실록 지리지> 국가 기록, 조선 제6대 단종//<응제시주> 권람, 조선 제7대 세조//

<동국여지승람> 노사신, 조선 제9대 성종//<동국통감> 서거정, 조선 제9대 성종//

중국 문헌 - <관자> 관중, 충추시대//<한서> 반고, 후한

고조선의 세력 범위와 대표적인 유물

- 고조선은 라오닝(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

- 점차 주변 지역을 통합하면서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한반도에서 랴오닝으로 이동한 게 아님)

- 만주와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

-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려주는 4가지 유물: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탁자식 고인돌

고조선의 발전

중국에서 기자가 망명 (기자 조선 시대)

- 중국 상나라(은나라)가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은나라 사람 기자가 고조선으로 넘어옴

- 기자가 단국조선에 이어 고조선을 다스리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성한 국가의 기틀을 마련

- 기자는 백성들에게 예의와 농사, 누에치기와 길쌈을 가르치고 8 조법을 만들었다고 함(반고, <한서>)

-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그 실체를 인정하고 기자를 숭상하는 의식이 확산

- 20세기에 민족주의 의식의 강화 → 학계에서 기자 동래설의 불분명함을 이유로 그 실체 부정

8 조법 (현재 3개 조목만 전함)

-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 여자들은 모두 정조를 지키고... 란 대목도 엿보임

중국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해짐

- B.C.5세기 - 중국으로부터 철기 문화 등 선진 문물을 수용

- B.C.4세기 - 고조선은 요서 지방을 경계로 중국 전국 시대의 강국인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

요동 지방에서 한반도로 이동

- B.C.3세기 - 연나라 진개의 침략으로 요동 지방에서 서방 2천 리를 빼앗기고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

               - 이동설 : 고조선의 중심지가 원래 요동이었으나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학설

               - 부왕, 준왕 등의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

               -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둠

고조선의 멸망 : 한 무제에 의한 멸망과 한사군 설치

한 무제의 침입 (B.C. 109년)

-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한 무제는 위만 조선의 중계 무역 및 흉노와의 교류 등에 불만을 품음

- 전쟁 전, 한 무제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 한나라를 섬길 것과 중계 무역을 금할 것을 요구함

- 우거왕이 거부하자, 한나라는 성하를 요동동부도위에 임명하면서 위만 조선을 자극함

- 분노한 우거왕이 군사를 보내 섭하를 죽이자, 한 무제가 이를 빌미로 위만 조선을 침공

- 한나라의 누선 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가 군사를 이끌고 침공 → 위만 조선이 격렬하게 저항함

- 고조선의 내분과 멸망(B.C. 108년)

- 위만 조선이  한나라군에 맞서 1년간 강력하게 저항하였으나 지배층 사이에 내분이 발생

- 내분 과정에서 니 계상 삼이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죽임

- 삼(참)이 한나라에 항복한 후에도 고조선의 성기가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결국 멸망함

한사군이 설치됨

- 한나라는 멸망한 고조선의 영토 안에 네 개의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력 강화 시도

- 한사군 : 낙랑군, 임둔군, 진번 군, 현도군

- 한나라 지배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 → 생산력 증가, 중국 문화의 확산 등

한사군의 변천

- B.C.82년에 진번 군은 낙랑군에 편입되고, 임둔군 또한 현도군에 흡수됨 → 낙랑과 현도만 존재

- 한반도 안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낙랑군은 313년에 고구려 제15대 미천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

 

 

 

 

 

반응형
반응형

초기 철기 시대(B.C.5세기경부터)

○ 철기 문화의 시작 - 중국 전국 시대 혼란기에 혼 반도로 이주한 유이민을 통해 중국의 철기 문화가 전래됨

                          - 강력한 철기의 등장으로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 바뀜 (청동기의 의기화)

                          - 철제 농기구 사용을 통해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철제 무기를 통해 정복 활동이 활발해짐

○ 독자적 청동 문화 - 한반도에 독자적 청동기 문화가 발전 (거푸집이 다수 발견되는 점도 근거)

                          - 대표적인 유물 : 세형동검, 잔무늬 거울 등 (일명 '한국식 청동기')

○ 철기 시대의 토기 - 덧띠 토기, 검은간토기 등 제작

철기 시대의 생활 모습

○ 철기 시대의 주거 변화 - 신석기, 청동기 시대 움집의 화덕이 벽면에 고정된 부뚜막이 등장 (하남 미사리 유적) 

○ 철기 시대의 무덤 - 널무덤(나무관 무덤, 목과 묘), 독무덤(항아리관 무덤, 독널 무덤, 옹관묘) 등이 만들어짐

○ 중국과의 교류 - 한자의 사용 : 경남 창원 다호리에서 붓이 발견→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증거

                      - 중국 화폐의 사용 : 명도전(춘추 전국시대), 반량전(진나라), 오수전(한나라), 왕망전(신나라)등

철기 시대 유적지

○ 경남 창원 다호리 - 붓 출토 (한자 사용의 증거, 중국 문화의 영향 확인)

○ 광주 신창동 - 총 53기의 독널 무덤(옹관묘)을 확인

선사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정리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
없음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 찍기 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덧띠 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손잡이 존재)

붉은 간토기

덧띠 토기

검은간토기

 

반응형
반응형

청동기 시대(B.C. 2000년 경~1500년 경부터)

- 더욱 다양한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

- 반달 돌칼, 바퀴 날 도끼, 홈자귀 등의 농기구 제작

- 돌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간돌검 등 제작 (사냥 도구 및 무기로 사용)

- 거푸집(금속도구 주조틀)을 통해 청동기를 제작

- 비파형 동검, 거친 무늬 거울, 청동 방울, 농경 무늬 청동기 (표면에 농경 모습) 등

- 중국식 청동기(구리+주석)가 아닌 시베리아 북방식 청동기(구리+주석+아연)의 영향을 받음

- 청동기를 만드는 전문 장인이 존재

- 청동기는 농기구로 사용되지 않음 (청동기를 제작하기 어렵고 재질이 무르기 때문)

- 청동기 시대에도 간석기나 나무로 만든 목기를 농기구로 사용함

- 덧띠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손잡이 존재), 붉은 간토기 등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생산력의 증가 - 농경과 목축이 더욱 발달

                   - 신석기시대에 재배하던 조, 피, 수수에 더해 콩, 보리를 재배

                   - 벼농사 시작 (부여 송국리, 여주 흔암리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증거)

무덤의 제작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이 만들어짐 (돌널=돌로 만든 관)

                - 고인돌은 강력한 군장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

청동기인의 주거 형태 - 직사각형 형태의 움집에서 생활

                             - 집터는 주거용 외에 창고, 작업장, 집회 및 공공 의식 장소 등도 확인됨

                             - 주변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환호와 목책을 설치

부계 중심 사회 - (농경, 전쟁 과정에서) 남녀의 분업화 →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

선돌(입석) 제작 - 선돌(입석) : 부족의 경계를 표시하며 거석 숭배 신앙을 반영

토우 제작 - 토우(흙으로 만든 인물상), 호랑이와 말 모양의 띠고리 장식 등 출토

식 석기·청동기 시대의 움집 비교

식석기 시대의 움집 (주로 반지하에 위치) 청동기 시대의 움집 (지상 가옥 등장)

원형 움집 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장방형) 움집

가운데에 불을 피우는 화덕이 위치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 저장 구덩이 설치

주로 강가나 해안가에 위치

주로 직사각형 움집

한쪽 벽면으로 화덕의 위치가 이동

저장 구덩이를 따로 설치하거나 벽면에 돌출시켜 저장

배산임수 지역 선호(산간, 구릉 위치), 집단 취락 형태

(적을 막기 위해) 환호(구덩이)와 목책(울타리) 설치

 

청동기 시대 유적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넓게 분포)

충남 부여 송국리, 경기 여주 흔암리, 충남 서천 화금리, 평북 의주 미송리, 전북 고창, 강화 부근리

다양한 바위 그림(암각화)이 만들어짐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 고령 장기리 알터 바위그림, 울산 천전리 바위그림, 영일 칠포리 암각화 

반응형
반응형

구석기 (약 70만 년 전부터)

구석기 시대 유적지

- 구석기시대에 이미 간단한 도구와 함께 불을 사용함.

-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 (사냥용 석기)

- 긁개, 밀개 등 (조리용 석기)

- 주먹도끼(양면핵석기) : 전기 구석기시대의 핵심 석기, 다양한 용도로 '만능 석기'로 불림

- 1978년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와 박편 도끼 등이 다량 출토 → 모비우스 학설이 무너짐

- 사냥(동물), 채집(식물), 어로(수산물) 활동을 통해 생존 (ex : 매머드 사냥)

-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

- 동굴,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서 생활

- 짐승 가죽을 착용 (아직 옷을 만들지 못함)

- 평등한 공동체, 지도자 존재(권력은 없음)

-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으로 단순 주술이 존재 (원시 신앙은 아님)

- 구석기 시대 유적의 분포는 주로 한반도 내륙을 중심으로 나타남

구석기시대 유적지

- 구석기 전기 유적지

충북 단양 금굴,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 연천 전곡리, 충북 단양 상시리 바위 그늘

- 구석기 중기 유적지

함북 웅기 굴포리, 충북 제천 점말 동굴, 강원 양구 상무룡리, 평남 덕천 승리산 동굴, 평양 역 포리 대현동,

제주 빌레못 동굴 유적지

- 구석기 후기 유적지

함북 종성 동관진, 충북 단양 수양개, 충북 제천 창내, 충남 공주 석장리, 충북 청원 두루봉 흥수굴, 평양 만달리 동굴

 

 

반응형
반응형

중석기 시대 (B.C. 8000년 경)

-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빙하기와 후빙기 사이의 간빙기)

- 유럽과 아시아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으로서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은 아님

- 작고 빠른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도구의 변화가 나타남

- 작고 날카로운 작석기 를 나무나 뼈 등 이음 도구에 꽂아 사용

- 대표적인 도구 : 슴베찌르개

- 슴베찌르개는 차츰 화살 촉으로 발전 → 활과 창을 제작하여 사용

중석기 시대 유적지

북한 지역 - 평양 만달리, 함북 웅기 부포리 등

남한 지역 - 경남 거창 임불리, 강원 홍천 하화계리, 경남 통영 상노대도 등

신석기 시대(B.C.8000년 경부터)

- 기존의 사냥, 채집, 어로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농경과 목출이 시작됨

- 농경은 조, 피, 수수 등 밭농사 위주로 이루어짐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시작)

- 목축은 개, 돼지를 키움

- 구석기 시대에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인류가 농경을 통해 생산 경제의 시대로 접어들게 됨

- 돌괭이, 돌삽, 돌낫, 돌보습 등 (농경에 쓰이는 도구)

- 갈돌과 갈판 (조리용 도구)

- 원형 움집 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장방형)의 움집 제작

- 원시 신앙이 등장

- 애니미즘(정령 신앙), 토테미즘(동.식물 숭배), 영혼 불멸 사상과 조상신 숭배, 샤머니즘(무당과 주술)

-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과 그물을 제작

- 치레걸이와 조개껍데기 가면 등의 장신구 사용

- 씨족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 영위 : 모계 중심의 폐쇄적 사회

- 계급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 신석기 유적의 분포는 주로 한반도 해안을 중심으로 나타남

신석기 시대 유적지

- 제주 한경 고산리, 강원 양양 오산리,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황해 봉산 지탑리, 평양 남경,

함북 청진 농포동, 함북 웅기 굴포리 서포항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