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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멸망과 부흥 운동 (660년~663년)

백제의 멸망 과정

- 신라 진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김춘추를 보내 나·당 동맹 체결 (648년)

- 진덕여왕은 당 고종에게 오언 태평 송을 바침 (650년)

-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

- 태종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신라 국왕

- 백제에 큰 원한을 품고 있던 태종 무열왕이 즉위한 후 나·당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백제를 공격

-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대군은 해로를 통해, 김유신의 5만 군사는 육로를 통해 백제를 공격

- 김유신의 5만 대군이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와 싸워 승리

- 신라의 화랑인 관창이 16살의 나이로 백제군과 용맹이 싸우다 전사한 이야기가 전함

- 나·당 연합군이 합세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면서 백제 멸망 (660년)

-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 (660년)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다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 운동거점(임존성)

- 복신, 도침, 흑치상지등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왕으로 옹립하고 부흥 운동을 전개

- 달솔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거점으로 3만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당나라군을 공격

- 흑치상지의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200여 성을 회복

-  왕족인 복신이 승려 도침과 함께 주류성을 거점으로 활약하여 20여 성을 회복

- 백제 부흥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당나라는 유인궤를 파견하여 신라군과 함께 부흥 군 진압에 나섬

- 백제와 오랫동안 친선을 유지하던 일본이 보낸 지원군이 백제 지역에 도착

내분으로 와해된 백제 부흥군

- 백제 부흥 군의 내분이 발생하면서 복신이 승려 도침을 죽임

- 왕자 부여풍과 복신 사이에도 불화가 일어나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고 고구려로 망명

백강 전투의 패배와 부흥 운동의 실패

- 3만 명 규모의 일본군과 백제 부흥 군이 금강 하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전멸

- 백강 전투의 대패로 인해 백제 멸망 후 4년 동안 이어진 백제 부흥 운동은 좌절

당나라의 신라 지배 야욕 (663년)

- 당나라는 신라 영토 내에 계림 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에게 계림 대도독의 자리 앉힘 (6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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