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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동명(성) 왕 (고주몽) (B.C.37년~B.C.18년)

- 부여 출신의 유이민

- 압록강 유역 졸본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 건국

제2대 유리왕 (B.C.19년~A.D.18년)

- 화의, 치희 두 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화희 때문에 떠나버린 치희를 그리워하며 "황조가"를 지음

- 졸본성 → 국내성으로 천도

제3대 대무신왕 (무휼) (18년~44년)

- 동부여에 큰 타격을 입히고 고구려의 영토를 확대

- 대무신왕의 아들인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일화가 유명

제6대 태조왕 (53년~146년)

- 계루부 고씨의 독점적 왕위 계승 (아직은 형제 상속)

- 5부족 체제 → 5부 체제로 발전

- 옥저 정복, 동예의 대부분의 지역 복속

제9대 고국천왕 (179년~196년)

- 부자 상속제 확립

- 5부의 행정 구역화 (동·서·남·북·중)

-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

- 진대법 실시 (곡식을 빌려주는 빈민 구휼 제도)

제11대 동천왕 (227년~248년)

- 삼국 시대의 분열을 이용하여 위나라 및 오나라와 교류

- 위나라를 도와 공손 씨 세력을 멸망시킴(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됨)

- 위나라가 방심한 틈을 타 서안 평 공격

-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 수도 주위의 환도산성 함락

제15대 미천왕 (을불) (300년~331년)

- 왕족으로서 은거해 살던 소금장수 을불이 왕이 됨

- 서안 평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선비족의 모용씨를 격퇴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

- 낙랑군을 정복하고 한사군을 축출하여 영토 확장

제16대 고국원왕 (사유) (331년~371년)

- 전연 선비족 모용황의 침입으로 수도의 환도산성 함락

-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던 근초고왕의 평양성 침공으로 고국원왕 전사 (371년)

제17대 소수림왕 (371년~384년)

- 중국 전진과 수교

- 불교 수용 (전진의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가 수용됨)

- 태학 설립 (최고 교육 기관)

- 율령 반포 (왕권 강화)

제19대 광개토대왕 (담덕) (391년~413년)

- 연호 "영락" 사용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

- 동쪽으로 동부여 정복과 동예의 잔여 세력 정복, 서쪽으로 후연 선비족 모용씨 격파, 남쪽으로 백제 위례성 공격,      북쪽으로 숙신(거란), 비려(여진) 정벌

- 시호 : 국강상 광개토 경 평안 호태왕 (호태왕=공개 토대 왕)

- 신라 원조 (신라와 고구려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호우명 그릇")

- 전기 가야 연맹 해체 (광개토대왕의 신라 원조 과정에서 공격을 받아 연맹체가 해체됨)

제20대 장수왕 (거련) (413년~491년)

-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만주 지린성)

- 중국의 분열 상태를 이용하여 중국의 남조(송), 북조(북위)와 각각 교류

- 만주 국내성 → 평양 천도 (427년)

- 경당 설립 (지방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예와 한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

- 백제 공격 (백제의 개로왕(부여경)을 죽임

- 충주 고구려비 건립 (축북 충주)

- 만주 정복 활동 (서북쪽 흥안령 일대까지 영토 확장)

제21대 문자왕(=문자명왕) (491년~519년)

- 북부여 정복 (부여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역사상 최대 영토 확보)

제24대 양원왕 (평성) (545년~559년)

- 한강 유역 상실 (신라·백제 연합군에 패하여 한강 유역 상실) (551년)

제27대 영류왕 (618년~642년)

- 천리장성 축조 (당나라를 대비하여 천리장성 축조)

- 연개소문의 권력 장악

제28대 보장왕 (642년~668년)

- 고구려의 마지막 왕

- 연개소문의 대당 강격 책으로 인하여 당나라와 갈등

- 당나라 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

- 당나라 대군을 맞아 양만춘의 안시성에서 격퇴 (안시성 싸움)

고구려 멸망 (668년)

- 연개소문이 죽은 후 세 아들 간의 내분으로 국가의 혼란

- 고구려의 국력이 쇠퇴해지고,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인 평양성 함락 → 고구려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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