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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B.C. 2000년 경~1500년 경부터)

- 더욱 다양한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

- 반달 돌칼, 바퀴 날 도끼, 홈자귀 등의 농기구 제작

- 돌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간돌검 등 제작 (사냥 도구 및 무기로 사용)

- 거푸집(금속도구 주조틀)을 통해 청동기를 제작

- 비파형 동검, 거친 무늬 거울, 청동 방울, 농경 무늬 청동기 (표면에 농경 모습) 등

- 중국식 청동기(구리+주석)가 아닌 시베리아 북방식 청동기(구리+주석+아연)의 영향을 받음

- 청동기를 만드는 전문 장인이 존재

- 청동기는 농기구로 사용되지 않음 (청동기를 제작하기 어렵고 재질이 무르기 때문)

- 청동기 시대에도 간석기나 나무로 만든 목기를 농기구로 사용함

- 덧띠새김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손잡이 존재), 붉은 간토기 등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생산력의 증가 - 농경과 목축이 더욱 발달

                   - 신석기시대에 재배하던 조, 피, 수수에 더해 콩, 보리를 재배

                   - 벼농사 시작 (부여 송국리, 여주 흔암리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증거)

무덤의 제작 -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이 만들어짐 (돌널=돌로 만든 관)

                - 고인돌은 강력한 군장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

청동기인의 주거 형태 - 직사각형 형태의 움집에서 생활

                             - 집터는 주거용 외에 창고, 작업장, 집회 및 공공 의식 장소 등도 확인됨

                             - 주변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환호와 목책을 설치

부계 중심 사회 - (농경, 전쟁 과정에서) 남녀의 분업화 →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

선돌(입석) 제작 - 선돌(입석) : 부족의 경계를 표시하며 거석 숭배 신앙을 반영

토우 제작 - 토우(흙으로 만든 인물상), 호랑이와 말 모양의 띠고리 장식 등 출토

식 석기·청동기 시대의 움집 비교

식석기 시대의 움집 (주로 반지하에 위치) 청동기 시대의 움집 (지상 가옥 등장)

원형 움집 또는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장방형) 움집

가운데에 불을 피우는 화덕이 위치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 저장 구덩이 설치

주로 강가나 해안가에 위치

주로 직사각형 움집

한쪽 벽면으로 화덕의 위치가 이동

저장 구덩이를 따로 설치하거나 벽면에 돌출시켜 저장

배산임수 지역 선호(산간, 구릉 위치), 집단 취락 형태

(적을 막기 위해) 환호(구덩이)와 목책(울타리) 설치

 

청동기 시대 유적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넓게 분포)

충남 부여 송국리, 경기 여주 흔암리, 충남 서천 화금리, 평북 의주 미송리, 전북 고창, 강화 부근리

다양한 바위 그림(암각화)이 만들어짐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 고령 장기리 알터 바위그림, 울산 천전리 바위그림, 영일 칠포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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